[가름끈]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상) - 무라카미 하루키
'24.05.26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너는 걷다 지친 듯 여름풀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작은 새 두 마리가 나란히 상공을 가로 지르며 날카롭게 울었다. 침묵 속에서 푸른 땅거미의 전조가 둘을 감싸기 시작한다. 네 옆에 앉자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실이 너의 몸과 나의 마음 을 촘촘히 엮어가는 것 같다. 네 눈꺼풀이 한 번 깜박일 때도, 입술이 희미하게 떨릴 때도 내 마음은 출렁인다.
한여름 찬란한 청춘, 풋풋한 소년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읽는데 내가 그장면에 같이 있는 것처럼 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산림이 우거지고 곳곳에 나무뿌리가 난무하는 오솔길에서 모나지 않는 돌들만 가볍게 밟아 뛰노는 그런 그림이 연상됐다.
소녀의 귀밑머리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반짝이고 눈이 시리도록 햇빛이 강렬한 그런 이미지가.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 안이야." 너는 말한다.
"그럼,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진짜 네가 아니구나." 당연히 나는 그렇게 묻는다.
소녀의 말은 죄다 수수께끼 같다.
16살의 '진짜' 그녀는 도시에 있고,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거기엔 시곗바늘이 달려있지 않는 시계탑이 있는 곳이라고 한
다.
그러면서 내겐 그 도시에 갈 자격이 있다고... 나를 원한다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인데
'우리 마을에서는 차가 하늘에서 날아'와 같은 말처럼
차가 하늘에서 날고있는 이미지는 연상할 수 있지만 어딘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다.
하루키의 책은 항상 이렇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항상 한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어쩌면 동화와 같고 허구같은 이야기를 정상적으로 한다
이런 하루키식 화법, 스토리를 리딩하는 것이 항상 재밌지만서도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걸까
이번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냥... '또 그거야?' 이런 느낌.. ㅋㅋ;
그런데 그렇게 이마를 맞대고서 우리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지금 와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화제를 하나하나 가려내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리 라. 하지만 네가 높은 벽에 둘러싸인 특별한 도시 이야기를 들 려주고부터는 그것이 우리 대화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녀와 이야기했던 수많은 이야기를 되뇌이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네가 말하고.나는 그것을 받아적는다. 그냥 그뿐이다.
주인공은 그것의 실체를 의심하는 걸까 그렇기에 질문을 하는걸까
어떤 맥락인지 모르곘지만 주인공, 나는 계속해서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가고 조금씩 그 도시라는 것을 내 안에 구축해간다
너가 가진 도시의 뼈대에 나는 살을 붙여간다
이미 소녀는 도시에서 왔지만 주인공과 같이 도시를 만들어나간다언뜻 듣기에도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을, 짐승들의 몸은 다가올 추운 계절에 대비해 눈부신 황 금색 털로 뒤덮인다. 이마에 돋은 외뿔은 희고 날카롭다. 그들 은 차가운 강물에 발굽을 씻고, 가만히 고개를 뻗어 붉은 나무 열매를 탐하고 금작화 이파리를 씹는다. 짐승들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사이클과 질서 속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질서는 그들 자신의 피와 맞바꾸어 주어진다. 격렬한 일주일이 지나고 보 드라운 4월의 비가 핏물을 씻어낼 무렵, 짐승들은 다시 원래대 로 정밀하고 온화한 존재로 돌아간다.
3장의 시작과 함께 짐승과 그런 생태계의 흐름,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말 혹은 사슴과 같은 이미지의 짐승이 연상된다. 그런데 흰 외뿔을 곁들인
그런 동물들은 문지기의 뿔피리 소리에 맞춰 도시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계절이 돌고 돌아 겨울이 오게되면 약해진 개체는 가차없이 도태되어 죽어가고
교미기가 오면 많은 동물들이 서로 싸우고 상처를 입어 또 죽어간다.
그 땅에서 흘린 붉은 피에서 새로운 질서와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반복해나간다.
마치 초봄에 일제희 연둣빛 버들가지가 싹을 튀우는 것과 같이.
어째서 이런 이야기가 도시에 서려있고 그녀는 주인공에게 왜 설명을 굳이굳이 해주는 걸까
그런 의문도 잠시 들었지만 그런 생명의 순환과 그런 죽음에서 비롯되는 새 질서를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멋있었다
멋있는 영국의 아나운서 목소리와 같이 보는 디스커버리 채널 같았달까...
우리는 서로의 집에 가지 않는다. 가족의 얼굴을 보거나 친구를 소개하지도 않는다. 요컨대 누구에게도-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와 너는 둘이서 보내는 시간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기에 다른 무언가를 곁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무언가를 곁들일 여지가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 사이에는 해야 할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많고,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소설엔 항상 보통 성숙하지 않은 느낌의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성숙한 인물이 실수를한다던가 그런 이야기보다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딘가 어리숙한 예를들어 서번트 증후군(이 책에서 나온다)이라던가.. 정신을 가끔씩 잃는 다던가(빵가게 습격, 카프카), 약간의 애정에서의 결핍이 있다던가(상실의 시대, 1Q84)~~
소년과 소년은 어떤 순수한 느낌이 강한 커플이다
그리고 그런 양상이 조금은 독특하다. 아니 아주 이상적이랄까
무언가를 곁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 그만큼 그들의 관계가 견고하고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의 첫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길고 따분한 시상식이 끝나갈 즈음, 수첩 메모난에 내 주소와 이름을 볼펜으로 적고 그 장을 찢어내 너에게 살짝 건넨다.
"혹시 괜찮으면, 나한테 편지를 한번 보내줄 수 있을까?"
나는 메마른 목소리로 너에게 말한다.
평소 나는 그렇게 대담한 짓을 하지 않는다. 워낙에 낮을 가리는 성격이다(그리고 물론 겁쟁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대로 너와 헤어지고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 각하니, 엄청나게 잘못되고 전혀 공정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용기를 끌어모아 큰맘먹고 행동에 나선다.
"네가 쓴 글을 더 읽고 싶어." 내가 말한다. 실수로 다른 방 문을 열어버린 사람이 서투르게 변명하듯이.
참으로 읽는데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너와 헤어지고 만날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엄청나게 잘못되고 전혀 공정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니
그런 경험 한번씩은 다들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 같다고
직감적으로 느끼는데 정작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내가 좋아하는 소년스러움에 아주 근접하다. 나는 이런 기회를 지나치고, 재차 오는 기회에 용기내서 이어지는 걸 좋아하는데
아무튼 너무 읽기에 가슴 벅찼다.(그만큼 좋았다는 이야기겠지~)
너는 약속 시간보다 사십 분 늦게 나타난다. 그리고 말없이 벤치 옆자리에 앉는다. 늦어서 미안해, 그런 말은 전혀 없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입을 다문 채 나란히 앉아 있다.
어쨌거나 일요일의 공원 벤치에서 간소한 흰색 블라우 스에 무늬 없는 남색 스커트를 입은 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너는 여느 때와 달라 보인다. 그 차이를 정확히 집어 내긴 어렵다. 다만 평소와 무언가 다르다는 사실은 한눈에 알 수 있다.
"왜 그래?" 나는 마침내 소리 내어 말한다. 무슨 일 있었어?"
너는 잠자코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다. 인간의 가청범위 바깥에 있는, 섬세한 고속의 날갯짓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
약속시간보다 훨씬 늦게 온 그녀, 이상하게 말이 없다.
무슨 일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가로젓지만
나는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챌수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앞에 그네를 타고 멀리뛰기를 하며 노는 두 아이를 돌아보고 다시한번 그녀를 본다. 그녀는 계속해서 묵묵 부답이다.
왜일까
갑자기 그녀가 한바탕 마을을 돌고 다시 그 자리 도로 돌아와 또 묵묵부답이다
나는 그냥 기다릴뿐
말을 걸지 않는다
조금씩 입을 여는 그녀, 가끔씩 이렇게 말을 할 수 없고 몸이 제멋대로인 때(몸이 굳어버리는 시기)가 있다고한다.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해하기로 한다.
(이걸 이해하는 주인공... 나는 잘 모르겠다... \)
도서관에 있을 때 말고는 도시의 지도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흐린 오후 시간을 이용해 반쯤 기분전환으로 시작한 이 작업에 나는 이내 몰두하게 되었다. 작업의 첫 단계는 도시의 대략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것이었 다. 다시 말해 도시를 둘러싼 벽의 형상을 이해하는 것.
나는 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다.
도서관엔 책 대신 달걀 형상의 다른 사람들의 꿈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읽는 일을 한다.
그리고 도시에 대해 알기위해 도시의 위치에 대해 사람들에게 묻곤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한 의문과 형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참으로 수수께기 같다. 커다란 벽에 둘러쌓인 도시의 형태에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 벽 안 사람들...
이해하겠나? 그걸 보면, 사람은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 가지 못해. 일단 눈으로 보면... 자네도 모쪼록 조심하게나되도록 그런 것에 가까이 가지 않게끔. 가까이 가면 반드시 안 을 들여다보고 싶어지지. 그 유혹을 물리치는 건 보통 일이 아 닐세."
노인은 나를 향해 검지를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다짐을 두 듯 되풀이했다.
"모쪼록 조심하게나."
쉼없이 도시를 둘러보다 나는 과로(?)로 쓰러진다.
그런 나를 보살피는 할아버지
어떤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준다.
자기는 군인으로서 부상을 당해 치료받고있었는데 창문 밖에 어떤 가인이 항상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항상 절반의 얼굴만 드러내고 있는 그녀에게 의문을 품게되고
그녀의 남은 절반을 보지 못하면 내 인생의 의미를 잃는 느낌이 들어 아픈 몸을 이끌고 보게되었으나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보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설명하려고 해도, 현자의 도움을 구해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것에 조심하라고 하는 할아버지...
분명 어떤 것과 연관이 있겠지 싶었다.. (하루키식 화법...)
육체는 영혼의 신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더라만." 문지기가 말했다. "맞는 소리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처럼 날마다 가련하게 죽어나간 짐승들 뒤처리나 하다보면 육체 따위, 신 전은커녕 그저 너저분한 폐가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그리고 그런 궁상맞은 용기에 욱여넣어진 영혼 그 자체에 점점 신뢰를 잃는단 말이지. 그까짓 거, 사체와 함께 유채기름을 끼얹어 확 불살라버리면 되지 않나 싶을 때도 있어. 어차피 살아서 고통받는 재주 말고는 없으니. 어때, 내 생각이 틀렸나?
문지기는 나를 위해 그림자를 내 몸에서 잘라주었다.
벽에 들어오기위해선 그림자가 있으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별개로 문지기는 그런 일을 하기도 하지만, 문 앞에서 죽어나간 짐승들을 한데 모아 태우는 일도한다.
그런 반복되는 일에 질려버린 문지기, 육체란 영혼의 신전이라기보다 그저 용기라고 표현한다.
영혼과 육체, 짐승, 벽 모두 어떤 의미일까
"웅덩이에는 되도록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요." 너는 말 한다(이제는 내가 낯설진 않아 비교적 친밀한 말투를 쓰게 되 었다). "무척 위험한 곳이거든요. 거기 빠졌다가 구덩이로 빨 려들어가 그대로 행방불명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 밖 에도 무서운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요.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그 근처에 가지 않아요.”
이야기에 진전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서쪽에 있는 물 웅덩이에 대해서 물었지만
그녀는 불분명한 이야기로 겁을 준다
내가 접근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하고 나는 그곳으로의 안내를 부탁한다.
그녀는 거절하지만 내가 가겠다니 그녀도 마지못해 따라온다,
웅덩이는 깊고 깊었다.
나는 웅덩이 너머엔 바깥세계가 있음을 직감했다.
벽에 둘러쌓인 도시와 구분되는 원래의 세계가 있음을 직감했다.
놈들이 사람들을 겁주려고 지어낸 거라고요. 그 웅덩이를 통해 벽 밑을 빠져나가면 곧바로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내 추측이에요. 여기 있는 동안 나름대로 도시의 사정을 조금씩 알아봤어요. 이 오두막엔 간 간이 사람들이 찾아오고 문지기도 보기보다 말이 많아서 여러 이야기가 귀에 들리거든요. 지하의 암흑 수로가 어쩌고 하는 말은 써먹기 편하도록 지어낸 게 분명해요. 이곳은 온갖 가짜 이야기로 가득하죠. 이 도시로 말할 것 같으면 구성부터가 모 순투성이고요."
내 그림자가 아파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림자의 쉼터에 갔다.
그림자는 자기가 감시당하고 있다며, 그들은 자기가 죽기를 소망하며, 어서 나와 몸을 합쳐 도망가야한다고 내게 소리친다.
'진짜일까?' 나는 의심한다
도시의 그녀도, 나의 그림자도 뭐하나 제대로 믿을게 없다 모두 의심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그림자 말마따나 이 도시는 가짜이야기로 가득할지도 모르고 구성은 모순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하나만 말씀드리죠. 당신은 바깥세계에 있던 것이 그녀의 그림자고, 이 도시에 있는 것 이 본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글쎄올시다. 실은 반대일지도 모 르거든요. 어쩌면 바깥세계에 있던 것이 진짜 그녀이고, 이곳 에 있는 건 그림자인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다면 모순과 가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세계에 머무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 당신은 확신합니까, 이 도시에 있는 그녀가 진짜라고?" 그림자의 말을 나는 생각해봤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본체와 그림자가 감쪽같이 뒤 바뀌는 게. 어느 쪽이 본체고 어느 쪽이 그림자인지 착각하게 된다는 게."
재밌어진다.
현실세계에서 몸이 굳고 갑자기 사라진 것은 그녀가 그림자여서 였던걸까
그런데 그반대가 될 수 있다고?
머리가 아득해진다. 그녀가 그림자였다면, 그렇다면 본인이 그림자임을 인식하고 있을텐데 그렇지 않은 척을 했던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더불어 지금 내 복잡한 상황이 그런 생각을 심화시킨다.
<다시 과거 회상>
너에게서 온 편지를 봉투도 뜯지 않고 책상 서랍에 넣어둔 채 한나절 묵힌다. 한시라도 빨리 읽고 싶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러나 그 편지를 곧바로 읽지 않는 편이 좋다-는 예감(혹은 기우)이 든다. 그래서 열어볼 때까지 한동안 시간을 둔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동안 서로 오갔던 편지가 멈춘이유에 대해서 그녀는 이야기해줬다.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재차 여기있는 나는 '대역'이며 '진짜'는 벽 안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편지 쓸 기회가 있었으면 하지만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없다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묵힌 편지는 그녀에게 온 마지막 서신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너에 대한 모든 단서를 잃고 만다. 아무래도 너 는 나의 세계로부터 소리 없이 퇴출된 모양이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설명다운 설명도 없이. 그 퇴출이 너의 의도였는 지, 아니면 어떤 불가항력이 작용한 결과(이를테면 차가운 바 닷물이 문을 부수고 쏟아져들어오는 것에 맞먹는)였는지는 모 른다. 남은 것은 깊은 침묵과 선명한 기억과 이뤄질 수 없는 약속뿐이다.
쓸쓸한 외톨이로 보낸 여름이었다. 나는 어두운 계단을 내 려간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쯤이면 지구의 중심에 닿 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내 려간다. 주위 공기의 밀도와 중력이 점점 바뀌어가는 게 느껴 진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고작해야 공기 아닌가.
고작해야 중력 아닌가.
그렇게 나는 더욱 고독해진다.
시간이 흘러 나는 도쿄에 대학교에 가게되었지만 그녀가 그리웠다.,
서로에게 어느정도의 선을 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어기고
전화를 했지만, 또 편지의 주소로 찾아가지만
그녀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게 너에 대한 모든 단서를 잃고 만다.
<다시 돌아와서>
"이 도시를 나가게 될지도 몰라" 나는 너에게 털어놓는다.
너에게 말하지 않고 이곳을 나갈 수 없다.-설령 이 도시가 지금 이 대화를 엿듣고 있다 해도
"그녀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서 이 도시에 왔어. 여기 오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동시에 너도 만나 고 싶었어. 그것도 내가 벽 안쪽으로 들어온 이유 중 하나야."
"나를요?" 너는 미심쩍은 듯한 얼굴로 말한다. "어째서죠?
왜 나를 만나고 싶었어요? 나는 당신이 좋아했던 열다섯 살 소 녀가 아니에요. 우리가 원래 하나였는지 몰라도 어릴 적에 떨 어져 벽 안과 바깥으로 갈라졌고 서로 다른 존재가 됐어요." 나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본다. 산속 맑은 샘의 밑바닥을 살 피듯이. 그리고 말한다.
. "너는 그녀가 아니야. 잘 알고 있어. 여기서 너는 꿈을 꾸지 않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없지."
슬펐다. 모든 것을 내게 주고 싶다던 그녀를 따라 도시에 왔지만
그런 그녀는 없다
그런 그녀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런 사실 속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너 T발 씨야?)
<다시 과거 회상??????????????>
스무 살 전후의 엉망이었던 시기를 나는 어찌어찌 넘긴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런 나날을 용케도 무사히 -상처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순 없어도 -빠져나왔다 싶어 스스로 감탄하고 만다.
삼십대가 끝나고 마흔 살 생일을 맞았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작은 동요가 일었다. 결국 누구와도 맺어지지 않고 이대로 평 생을 외톨이로 보내는 걸까
그렇게 마흔 살 생일을 별일 없이(누구의 축하도 없이) 통과 한다. 회사 일은 안정적이다. 직급도 그럭저럭 올라갔고 수입 도 부족하지 않다(사실 무언가를 열렬히 갖고 싶어할 때가 거 의 없다).
???????????????
갑자기 풀악셀,
그녀없이 살아온 내 지나온 인생에 대한 회한을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이야기는 사실 두개였던 것이다.
17이후 도시에서의 나
그리고
17이후 그녀없이 도쿄에 정착한 나
-
마흔다섯 살 생일이 돌아오고, 그다지 유쾌하다 할 수 없는 이정표를 통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구덩이로 떨 어진다. 쿵 하고 난데없이.
...
어이, 당신." 남자가 굵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왜 그런 데 있나?" 현실인지 꿈인지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덥지 도 춥지도 않다. 신선한 풀 냄새가 난다.
"왜 이런 데 있나?"
나는 일단 남자의 질문을 되풀이한다.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모르겠어요." 나는 대답한다. 내 목소리 같지 않다. "여기가 대체 어디지?"
열일곱살 이후 그녀없이 도쿄에 정착한 나는 다시 벽에 돌아온걸까...
<다시 돌아와서>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잠시 침묵했다. 다시 한번 두꺼운 눈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림자의 얼굴을 정면에 서 똑바로 보았다. 결심을 굳힌 뒤 큰맘먹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이 도시를 나갈 수 없어. 미안하지만 너 혼자 가줘."
그림자와 나는 결국 어떤 결심을 하고 도망친다
하지만 웅덩이에 다달아선 마음을 달리한다
원래 세계로의 귀환에 어떤 의미가 있는 모르겠고, 내 전부인 소녀가 여기 있으니
진짜도 가짜도 사실 중요치 않은 것이리라
그림자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고 웅덩이로 뛰어내렸고 나는 둘이서 왔던 길을 혼자 돌아갔다.
'한번도' 등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1부가 끝이 났다.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입장에선 매우 무섭고 무서울 것 같은데
실제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런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그런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악의가 느껴지진 않지만 거짓된 부분이 조금 있고 어딘가 석연찮은 부분이 분명한 도시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이 크게 유효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와 이야기하며 구성한 세상임이 갈수록 그를 안심시켰을까 싶기도한다.
물론 실제로는 앞선 의심, 생각 없이 그냥 도시속의 생활과 녹아드는 느낌이 맞을 것이다
아무튼 1부까지의 감상은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