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

첫 중국 작가의 책이자

첫 희극 입문작이다.

 

'25.02.25

 

과하지 않은 복선과 액자식 구성으로 뻔할 수 있는 스토리를 탈피하면서 희극의 장점을 잘 살렸지만서도

복잡한 인간 관계가 희극으로 즐기기엔 피로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도파민 터지는 순간들이 워낙에 많다보니 

유희용으로는 또 좋을 거 같기도 하다

(불륜, 도박, 쌈박질 그리고 출생의 비밀..)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한 인물에게 마음이 치우치지 않았다

보통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 누구 한 인물에게 마음이 동하기 마련인데

한명 한명의 서사의 무게를 가늠하기엔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먼저 조우판이.

늙은 광산 사장(조우푸위안)에게 시집을 왔지만, 남편은 병적으로 전처의 흔적에 집착하다시피 하다보니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 나이도 엇비슷한 첫째 아들(양아들이다)에게 위로를 받다보니 잠깐 불륜 관계가 되었고 그녀는 그런 집착을 끊어내지 못한다.

 

조우핑은 그런 조우판이와의 관계를 끊고 하녀인 루쓰펑과의 관계를 꿈꾸지만 여러 이해관계-어머니와의 불륜이 정리가 안되었으며 보수적인 분위기 아래 아버지의 허락을 구할 수 없는 등- 아래 큰 결심을 내리지 못한다. 

 

루쓰펑은 상식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하녀로 나온다,하지만 아쉽게도 시대적인 배경 아래 그녀가 할 수 있는건 많지 않다.

 

루다하이, 루쓰펑의 오빠로 광산 노동자이다. 회사 노동조합의 우두머리 중 하나로 나오지만, 조우푸위안의 계략으로 동료들에게 배신당한다.

 

마지막으로 조우충, 조우 가족의 막내아들이고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이다. 일단 루쓰펑을 짝사랑하지만 루쓰펑은 그의 형을 사모하고 있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그녀에게 멸시받는다. 어찌보면 위 인물중에서 가장 자유롭지만 그 어디에서도 호응받지 못한다. 감정에 있어서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기에 그 안타까움이 가장 극적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그 감정은 이해관계에서 오는 감정이 아니라 어리고  순수한 그것에서 온 것이라 가슴이 아프다

 

 

 

글의 말미에는 작가 차오위의 서(序)가 있는데

나는 책의 내용보다도 작가가 그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생각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정말 겸손하고도 냉정하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지 글에서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보였다.

지난 십여 년간 여러 희곡을 읽어보기도 하고 공연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떤점에서 일부러 누구를 모방한 기억은 없다. 어쩌면 잠재의식의 저변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곘다. 은혜도 모르는 노예같이 한가닥 한가닥 주인의 금식을 뽑아내어 자신의 추한 의복을 짜 놓고도 내 손에 왔기 때문에 이미 퇴색해 버린 금실이 주인의 것임을 부인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남의 간단한 이야기나 약간의 에피소드를 훔치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같은 진술이 얼마나 많은 고금 대가들의 손길을 거쳐 시가와 희곡, 소설, 전기 작품으로 재창작 되어 왔던가.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해도 나는 뇌우를 집필할 때 어떤 작품을 염두에 두고 창작했는지 생각해 낼 수가 없다. 비록 그 몇몇 대가의 힘있고 아름다운 필치 한 점, 한 획, 한 문장이라도 모방할 수 있다면 큰 영광이겠지만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희곡을 마주할 배우에게,

비평이란 칼을 들고 난자할 평론가들에게 

그리고 무대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뛰놀게될 작은 생명들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작품에대한 그의 사랑을 볼수 있었던 것 같다. 

 

희곡은 어떤 사람이 쓸까 

드라마는 어떤 사람이 쓸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작가의 글을 보며 어느정도의 해답이 되었던 것 같다

세상에 던지는 물음표의 한 형태가 희곡이 될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사람의 마음에 무게를 잴 수가 있을까 

무게를 잰다 한들 사랑의 비중은 측정할수 있을까

 

24.02.11

홍대 연대포

 

결국 그녀와 교제를 시작했다. 

이전에 썼던 글을 너무나 지우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지난 일에 대해서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녀가 그 주제를 싫어한다고 이미 표현한 적이 있었지?"라는 질문에 나는 기억을 되짚었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미 그녀는 한 차례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기에, 모든 귀책 사유는 내게 있었는데 말이다.

그저 나는 또 그녀에게서 도망칠 핑계가 필요했었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그녀가 가이드라인을 친절히 그어주었는데, 그녀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며 선을 넘나든 것인데 말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나무랄 자격이 있었는가 

감히 배려를 운운하기엔 눈치가 없었다.

 

그 이후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해야지 표현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짐했지만 

생각외로 쉽지가 않았다

왜냐면 그녀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거든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볼모로 그녀에게 방을 잡자고 했다

 

핑계를 대자면 먼저 20대 후반의 남녀가 데이트 코스로 만화카페를 간다는 게 

내 생각에선 조금 우스꽝스러웠고, 거기서 넷플릭스를 본다는건 더욱이 상상이 안됐다.

물론 사귀기 전에 남녀가 대실을 한다는게 더 우습기도 한데..

 

다행히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녀는 내가 무안해지지 않도록 그랬을까

혹은 나에 대한 마음이 더 커서 그랬을까

내게 져주었고, 나는 그자리에서 고백헀다

침대에서 고백하는 장면이 꽤 진짜 우스운 꼴인데

한편으론 나답고 또 풋풋한 느낌도 났던 것 같다 

다만 그녀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지가 조금 의문이다

이런 기억조차 저 먼 기억의 저편에 둘 수 있도록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할텐데 

후후

내가 잘해줄게 꼬맹이 녀석

 

 

 

 

 

 

 

 


사회주의자와 공화당원이 사랑할 수 있다. 종교가 달라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패턴이 다르면 사랑하기 어렵다. 사랑의 패턴이란, 이를테면 만남의 양식과 보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랑의 이름으로 기대하는 만남의 유형이 다르거나 걷는 걸음의 폭이 다르면 어긋나고 뒤틀리고 결국 짜증스럽게 되어 관계를 접어버릴 마음을 먹게 된다.

 

사랑은 역시 사람이 하는 것 

 

너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말이야 역시

감정이 무르익기 전에 나는 대화가 편한 것이 100번 중요한 것 같아

대화 없이 과연 어떤 것들을 약속하고 또 조율해나갈 수 있을까 

나는 대화하기에 앞서서 배려가 서려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 같아

 

너가 기억하지 못하는 싫어하는 주제에 대해서 내가 가볍게 꺼냈을 때

정색하는 모습을 봤어 

나는 당황해 말을 잃었고 곧이어 너도 말을 잃었지

너가 말을 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나는 이해할수 없는 걸

아니 단순하게 더이상 그 주제를 꺼내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하면 될 텐데 

너에겐 배려가 말끝에 앉아 있지 않아 

만약 이야기를 꺼낸 내게 배려가 없다고 한다면 그건 이기적인거야

자기방어라고 네가 말을 해도 어쩔 수 없어

 

우리가 만약 사랑하게된다면

나는 고민에 고민해서 좋아한다는 말 대신 마음을 녹여내 수십가지의 틀로 표현하고 싶을텐데

너가 과연 알아줄까 

지금 너는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는 할까

아니 너의 마음이 어떻게 내게 닿는 지 고민할 때까지 나는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그런 기본적인 것까지 가르쳐야할 정도로 나는 인내심이 있지도 않고 아직은 너와 그정도의 유대감은 없는 것 같아 

 

나는 좋은 사람인데 

너는 그걸 알아줄 만큼, 좋은 사람은 아직 아닌 거 같아 

 

나만 또 고민하고 표현하지

 

너가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 긴 연애들

그 긴 연애가 어떤 형태일지 나는 솔직히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본질적으로 같은 보폭과 양식으로 나를 대입하기엔 조건이 다른걸

 

 

 

 

 

 

나와 등 뒤에서 키스를 해야했던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으며 이 책의 첫 장을 씁쓸하게 넘겼지만

 

마지막장은 누군가와 함께 넘기는 기분으로 마쳤다.

'25.01.29

전체적인 플롯은 선희가 영석이와 교제를 하다, 대학시절 좋아했던 형배의 연락을 받으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액자식으로 구성했다.

작가의 말을 통해 서로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사유하고 스토리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관찰력

작가의 관찰력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했다

단순하고 정형화된 표현에서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시각들은 간단하게 나올 수 있는게 아닐텐데 말이다.

일례로 책에 소개된 표현으로 '사랑에 빠지다', '사랑의 자격' 이런 것들이 있는데 

 

사랑에 빠진다 라는 것은 굉장히 수동적인 표현인데, 이는 사랑이 닥친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랑에 높은 자격을 부여하여 사랑이란 것이 허구적으로서 밀쳐놓음으로서 자기 변호의 표현으로 해석되거나, 다른 하난 언제든지 취득 가능 한 자격으로 치부하고 그러하 자격을 구태여 차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견지하여 상대방에게 책임감을 덜면서 어떤 위선의 표현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표현에 대해서 한정했을뿐, 상황, 감정 등에 대해서 어휘, 여타 소설 등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는데 그 부분이 실로 좋았다.

 

 

 

프란츠 카프카는 세번 약혼하고 세번 파혼했다. 세변의 약혼은 사랑에 대한 그의 갈망을 시사한다. 그리고 세번의 파혼은 사랑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암시한다고 할수있다. 그는 사랑을 갈망했지만 사랑에 붙잡히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는 두번의 약혼과 파혼의 상대였던 펠리체바우어에게 보년 편지에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녀와 함께 살 수도 없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써 보냈다. 비슷한 표현이 그의 다른 글에도 나온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 과 관련된 주제로 결혼을 언급하면서 감옥에 갇힌 죄수'의 이중적인 욕망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죄수는 탈옥을 해서 감옥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 지만, 동시에 감옥을 잘 개조해서 그 안에서 살고 싶은 욕망 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두 개의 욕망은 충돌한다. 감옥에 서 나가려고 하면 개조해서 살려는 욕망이, 개조해서 살려 고 하면 탈옥의 욕망이 맞선다. 그는 나가지도 못하고 개조 하지도 못한다. 그는 온통 그녀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면서 도 그녀를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것이 카프카의 난처한 심리적 포지션이었다.

 

대학시절 형배는 선희의 고백에 온 몸에 사랑의 기운이 감싸돌았지만 그와 동시에 숨이 막힐 듯한 위기감에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 바람둥이 준호는 그런 형배에게 형배가 사회에 의해 정형화된 틀에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나무란다.

 

형배는 말한다. 
한 사람과의 길고 지루한 사랑이 고상하고 훌륭하고 인간적인 것으로 장려되고, 그렇지 않은 사랑은 저열하고 추잡하고 비인간적인 것처럼 선전되는 것 은, 아무리 사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은 그마저도 효용성이 의심스럽거니와, 무엇보다 사랑의 본질 을 왜곡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불순하고, 인간의 감정과 본성에도 맞지 않은 모순당착이다.

사랑을 제도와 섞어서 혼동하지 말자는 뜻이다. 세상의 질서를 위해 사랑이 희생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하자는 뜻이다.

결혼제도의 유지를 위해 사랑은 왜곡되고 희생을 강요받았다.

 

사실 내가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생각과 같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없고, 사랑의 형태란 다양하고 유일하지 않다

단순하게 사랑의 종착지가 결혼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사랑의 방법에 대해 제법 길게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이야기한 사람은 준호였다. 그는 사랑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랑의 패턴이라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사회주의자와 공화당원이 사랑할 수 있다. 종교가 달라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패턴이 다르면 사랑하기 어렵다. 사랑의 패턴이란, 이를테면 만남의 양식과 보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랑의 이름으로 기대하는 만남의 유형이 다르거나 걷는 걸음의 폭이 다르면 어긋나고 뒤틀리고 결국 짜증스럽게 되어 관계를 접어버릴 마음을 먹게 된다.

 

이건 준호가 혼전순결(그런데 키스까지 안되는)의 민영을 만나며 키스가 사랑의 한 방법인가 아닌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는 내용인데, 청주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내 친구가 생각이 났다. 단순히 끝끝내 행복해지지 못한 T와 F의 연애로 소개할 수 있지만, 조정만으로 타협이 되지 않기도 하고 또, 감정만으로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구나를 실감시킨 경우였기 때문이다. 연신 사랑해를 귀에 속삭여도 감정보다도 설득이 되어야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들의 속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삼자의 시선은 그러했다. 그가 이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더군다나 민영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매일 밤 10시 전에 귀가하고 주말마저 허용받지 못하다보니, 그녀를 빼앗기 위해 그녀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다. 그럼으로서 빼앗긴 일요일을 빼앗아냈다. 그럴수 있다고 믿었다. 

 

좁은 문에서 제롬이 알리사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조숙한 알리사는 제롬에게 그런 예배는 순수하지 않다고 나무란다. 제롬의 관심은 순수한 예배가 아니라 알리사의 사랑을 얻는것이기떄문엑비로 그곳이 천국이라 해도, 거기서 그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자기에게는 아무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 그는 자기의 예배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가 그런 비난을 개의치 않기때문이다. 그의 예배가 순수핮 ㅣ않다는 것이 곧바로 그가 순수하지 않다는 근거가 될수는 없다. 어떤 순수는 떄로 순수하지 않은 행위를 통해 증명된다. 

 

 

아직 완숙한 사랑(내 나름 정의한 사랑의 종착지로 표현하는 궁극의 사랑)에 도달해본적없는 나로서 건강한 사랑 -말이 좀 웃기다- 에 대해서 고민해본적이 있는데, 마음이 사랑으로만 차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애초에 조절이 어려우면서 채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불타는 속성을 갖고있다 보니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띄고 결국엔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게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랑이란 것은 만져지지 않다보니 사랑의 갈증은 비교적 충족되기 어려운 마음보다 촉감, 육체적인 쪽으로 기운다. 설상가상으로 채워지진 않으면서 말이다.

 

영석의 사랑은 그런 성향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영석은 그녀의가슴만이 아니라그녀의 손이든 발이든 귀든 어디든 만졌고 만지려고 했다. 그녀는 얼굴을 찌뿌렸는데 그가 말하는 "닿으려고 그래 닿아 있으려고"에서 생략된 목적어가 여자의 몸(성적대상물인 여성의 신체)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알았다. 그가 닿으려고 하고 있는 것은 여성의 신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만지는 것이 단순한 사랑의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기를 살아있게하는 존재인 사랑에게 닿으려고 안타까운 몸짓이라는 것을.... (중략)... 에로틱한 것들은 실은 에로틱하지 않다. 안타깝고 안쓰럽다

 

 

소설의 절정 단계에서 형배와 선희는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와중 영석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셋이서 마주하게된다. 하지만 오해는 오해를 불어일으키고, 의심은 확신으로 자리매김하며 영석의 머리 속은 복잡해진다. 


가령 침대에서 연인과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고 난 직후, 혹은 아주 고약한 경우이지만 심지어 그 도중에, 자기와 나 누고 있는 이 육체적 사랑을 그, 또는 그녀가 자기 아닌 다 른 사람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연인의 몸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몸에 의해 뜨거워져서 구체적 인 어떤 반응을 하고 있다는 상상은 그대로 뜨거운 불이 되어 가슴을 태운다. 상상 속의 그 다른 사람은 대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인데,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 불 길이 견딜 만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는 사 람(즉 상상의 배역을 맡길 만한 근거가 있거나 맡기기에 손색이 없다 고 판단되는 사람)일 때 이 불길은 특히 맹렬하다. 그 누군가가 했거나 했음 직한, (과거의 어떤 순간에) 했을 것으로 추측되거 나 (미래의 어떤 순간에) 할 것으로 예상되는 행동의 세목들이 상상 속에서 재현된다. 행위자가 지명되어 있으므로 이 재현은 억지스러운 면이 제거되어 자연스럽고 섬세해지고, 따라서 거침이 없게 된다. 영석에게 찾아온 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가. 저렇게 생긴 바로 저 남자가, 당신에게 그랬단 말이 지····. 그의 상상은 디테일해지고, 그의 질투는 영역을 확 장하며 펼쳐진다. 미학적 고려를 할 여유 없이 괴상망측한 형태로 확장된다.

 

그리고 영석은 선희에게 실언을 하고야 만다.
이후 형배는 영석을 얕잡아보고  아랫것으로 치부하며 선희몰래 정의의 사도인양 영석을 개인적으로 만나 매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선희에게 그녀가 원한 것을 대신 집행해주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되려 호통을 듣지만 그때 마저도 그는 무엇이 잘못된지 깨닫지 못한다. 

 

이후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으로 영석과 선희의 사랑을 비추어보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준호의 이야기로 가볍게 마무리된다. 

 

 

 

 

정독을 했을 때엔 그저 소설의 탈을 쓴 에세이, 소설로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라는 오만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가볍게 읽어보니 그 복선과 표현, 감정에 충실한 수작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사랑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사랑에 대해선 더 잘 알게된 것 같은데 

아직은 나도 영석과 선희보다 형배와 같은 입장이라 더욱이 어려운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사유한다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지금 사랑에 한 걸음 떨어진 이들에게나 중요한거지

 

 

 

 

 

 

 

 

 

 

 

 

 

 

 

이성으로부터 받는 인기에 대해 말할 때 빼놓으면 안 되 는 요소가 있는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개방성이다. 객관적으로 이성을 끌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가졌음에도 불 구하고 이성의 접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세를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지 않을 때 이성이 다가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관계란 것은 본질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해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느냐에 대한 척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관계라는 것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관계라는 것의 시작에 있어서 강제라는 속성을 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첫 발을 뗀 이후, 우리는 사회라는 것을 학습하며 관계라는 것을 주입당한다.
끊임없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매번 바뀌는 친구들. 선생님. 학교. 음식.
그러다 강제성이 결국에 탈락되고 나서야 흔히들 말하는 인간 관계가 비로소 완성이 된다고 이야기를 할수 있다.
 
우리가 관계를 두려워하는 것은 미완성된 인간관계 속에 각인된 트라우마라는 것이 있기 때문아닐까
 
 

25.01.11

 

캠핑캠핑

 
나라는 사람은 관계에 있어 포기가 확실한 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관계에서의 포기는 관계에서 오는 기대감의 소거랄까
따라서 상처도 감동도 없다 
 
그저 내게 포기당한 사람들은 내 인생에 있어 엑스트라 수준의 행인 1, 행인 2가 된다.
카메라 초점 밖의 피사체 처럼 흐려져 관심을 두려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시야가 좁아질 수 있지만 좀처럼 집중력이 흩어지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내겐 그저 그런 엑스트라로 보인다 
내 카메라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담기에도 스크린이 부족하니깐 
 
 
.
.
.
 
 
 
그런데 이번에 캠핑을 하면서 조금 독특한 사람을 만났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 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일꺼라 생각해'
'누가 나를 싫어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어떻게 나를 싫어할 수 있어?'
'그러면 나 막 그런다? 나는 그 사람한테 가서 내일 가서 더 크게 인사 해!'
 
그녀는 자기애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눈으로 빛이 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눈이 시렸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랬다.
얘는 남모를 상처가 많겠다고 
스스로를 좀먹으며 관계를 연명해가는 녀석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순진무구하다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눈과 말하는 표정과 눈빛에서 인간애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수많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자기연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고 물었다 
'너 그거 어떤 하나의 재미처럼 여기는거 아니야? 너를 좋아하게 만들면 성취감을 느껴?'
박장대소를 하며 그 사람은 '우와 어떻게 알았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서 나는 관계라는 것은 낯선 것에 대한 척도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것조차 아니 관계라는 것이 유희가 될 수 있는걸까 
통제를 벗어나는 관계조차 그녀에겐 재미가 될 수 있는걸까 
흥미가 간다.
궁금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그저 한조각 유희였을까
 
 
 
 
 
 
 
 
 



내가 널 어떻게 잊었는데...

 

숨가쁜 10회라는 호흡 속에서 파멸에 치닫는 속도감과 전개는 완벽.

결말의 불완전함 마저도.

 

단순하게 애니메이션, 오락으로 치부하기에 

그 연출이 매우 치밀했다

(달과 관련된 루시의 꿈, 노골적인 듯 드러나지 않는 레베카의 애정 등)

단순하게 사이버 펑크라는 단순한 주제로 컴퓨터 기술에 의해 지배당하여 발생하는 억압적이고 무법적인 서브컬처를 다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왜 멈출 수 없었을까 

메인과 도리오가 사라지고 

사이버 펑크로서의 삶을 포기하면 

루시와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데이비드는 척추가 뽑혀 유탄에 몸이 터지고 

메인의 시체는 찾아볼 수도 없다

왜 데이비드는 그러지 못했을까 

 

작 중 어머니의 유골을 놓지 못하는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사고로 어머니를 잃어 글로리아의 바람대로 아라사카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것은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데이비드는 사이버사이코시스에 시달린다(메인과 도리오와의 죽음도)

 

아마 일반적인 사이버 펑크와 데이비드와의 차별점(인간적이고 따듯한 심성의 모습)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면서 

멤버와 팀워크를 중요시여기는 메인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 모습이 지금까지의 성공한 데이비드를 만들었지만 

스스로를 파멸까지 몰고가고야 만다

인간의 형태을 찾아보기 힘든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그런 속성(사랑)이라는 족쇄를 차고서 

용병단(가족)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소모되고 마모된다

 

데이비드가 인간적인 따듯함을 지니고 있음에도 점차 기계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장르적 비극성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이유가 어떤 과거의 트라우마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스토리에 설득력을 더하면서 상실감을 배가시키기도한다.

 

 

 

더불어,루시라는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이기에 다들 루시에게 많이들 감정을 이입한다

(물론 애니메이션 자체에서 루시를 매우 띄워준다)

데이비드에게 루시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지배적이것이라는 생각이 분명 들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관객몰이용 캐릭터이자 감정이입의 도구)

 

사실 루시는 데이비드가 지켜야할 수 많은 꿈 중 하나인 것이고 

데이비드는 '달에 가고자 하는 꿈'이 점차 '달에 함께가고자 하는 꿈'으로 루시 희망이점차 변모하는 모습을 눈치채기에

그는 너무나도 바쁘고 고통스러운 삶속에서 느끼지 못한다.

더불어 사이버 사이코시스도 있고 말이다.

 

데이비드는 그런 모든 것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어깨엔 조금씩 피로가 쌓인다.

데이비드의 최후

 

데이비드는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메인의 의지를 잇고 싶었고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루시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을 모두 이루고 지킬만큼 사실 스스로 특별하지 못했던 나머지.

 

루시와 데이비드 간의 커플링과 루시의 뛰어난 캐릭터성에 파묻힌 채 

데이비드의 그런 심리적인 모습이 파묻힌 감이 있는 것같아 아쉬운 마음과

마음조리며 애니메이션을 보며 꿈틀대는 감정을 남기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긴다

 

 

 

피할 수 없는게 있다

사람이라면

아니, 습관화된 무언가를 갖을 수있는 존재라면 말이다.

 

나는 항상 그런것 같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손에 닿는건 결국 그저 기성의 바리에이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똑같은 맛 똑같은 구도 

높은 수준의 만족을 기대할 수 없지만 

평균 수준에 항상 충족하고 만다 

 

항상 그렇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새로운 의미를 찾지못한다

 

'24.12.14

 

'도시와 불확실한 벽'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것과

하루키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읽었다

 

하루키의 작품답게 두 개의 플롯이 평행하게 진행한다

하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다른 하난 세계의 끝.

 

세계의 끝 챕터의 경우, 우리가 아는 도시와 불확실한 벽의 내용과 비슷하다

벽으로 둘러쌓인 도시, 꿈 읽기, 그림자.

 

다만, 전에 읽었던 작품과 달리

소년과 소녀의 벽 바깥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고 

단순하게 소년은 소녀를 어디서 봤던 것 같다.

소녀는 아마 내가 아닌 그림자를 만났나보구나 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전작의 경우, 그 부분이 매우 재밌었는데 말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편이다.

책의 시작되는 부분부터 매우 매력적이었고, 

오컬트적인 세계관의 묘사가 매우 독창적이었다 

더불어 셔플링, 브레인 샤워 등의 소재는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생각은 과연 어떻게 하는 걸까

 

 

 

 

 

 

예전에 어떤 회사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면접관이 묻더라 

'면접자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어떤 질문이 좋을까요'

머릿속에서 팽팽하던 고무줄이 순식간에 장력을 잃듯이 내 입이 움직였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게 좋지 않을까요?'

 

의식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그 이후로 가끔 호감이 있는 친구들에게 묻는다

좋아하는 책이 있냐고

 

'24.10.26

파과 - 구병모

 

공존하기 어려운 주제가 한 곳에 엮였다 

'노인'과 '킬러'

그 미묘한 이질감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 부분을 잘 파고든 것 같다.

자신이 노인이라는 것을 인지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점과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럽고 절망스런 노화를 잘 표현해 현장감을 잘 살렸다.

 

작 중 주인공 조각의 스토리는 매우 흥미롭고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부분은 백미였지만,

현실에 해당하는 조각을 둘러싼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담담한 문체가 글을 읽는데에 방해가 되지 않았지만, 글을 읽는 재미는 조금 덜 했던 것 같다.

 

 

책장에서 책을 간택하기 까지, 

고르는 방법

음 좋은 책을 읽어야할텐데

인용된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것  

 

무슨 드라마인지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그저 인용되었다는 사실로서 읽었다.

 

사실 그 제목도 매우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4.10.18

 

 

사랑이 사랑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함은

과실가 익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고무가 열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물러졌으면 물러졌지 단단해지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사랑이 아니라 정이라는 것이 새롭게 생겨 또 다시 엉겨붙는 것.

 

 

소설의 폴과 로제가 그러한 것 모습을 보인다 

영원할 것 같은 미래를 꿈꾸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로제를 보며 마음에도 없는 남자 시몽에게 편지를 한다

 

이중적이면서 이기적인 모습을 여실하게 볼 수 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시몽을 위해서라도 비록 바람을 피지만 내가 사랑하는 로제를 위해서라도 그저 바보가 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끝끝내 로제와 다시 만남을 이어가는 모습은 또 나름 재미지다 

소설이 말하고 싶은 바는 언뜻 잘 모르겠지만

 

내 가슴 속 한편에 갖고 있는 생각으로 비추었을때 얼추 비슷한 내용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랑과 결혼은 다르다고. 

결혼하며 다른 이와 사랑할 수 있다고.

결혼은 사랑에 익숙해져 다른 형태의 사랑, '정'이라는 것에 다달아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결국 시몽과의 사랑은 완숙해지지 못한 것이고

로제와의 사랑의 결실이라는 '정'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며 로제에게 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로제도 그것을 어느 순간에 느꼈을 것이고

 

 

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까지의 과정을 설득력있게 풀어내지 않고 담담하게 적어내는 글은 개인적으로 불호이지만

글을 읽는 내 망상은 그러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란게 설명이 불필요한 이기적인 존재임을 감안하기에 

폴의 그런 행동(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말과 함꼐 마지막으로 나에게 구애하는 매력적인 남자에게 나를 보러 와달라고 한다, 정작 자신은 확신을 갖고 있지 않지만)과 로제의 바람(비교적 수준낮은, 그렇지만 어리기에 매력적인 여자와 바람을핀다)는 설명없이 이해가 되지만

그들의 감정.  

그들의 상황.

독자가 이해하기에, 몰입하기에 충분한 사실적인 묘사가 매우 빈약했다 

그런 부분에서 희열을 얻는 나로서는 매우 아쉬웠다.

 

 

대관절.

책이야기는 제쳐두고 그래서 말인데 거기 글을 읽는 당신

혹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4.10.12

 

사회생활을 하며 떼가 조금씩 묻고있는 요즈음

나는 이제 슬슬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떤 감정과 사건의 교류없이 사랑을 쟁취하고 영위하기 위해 행해야하는 수많은 행동들은

분명 멋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시간, 감정 그리고 돈까지 회수가 불가능한 일명 호구짓이라고 말이다.

(겉보기만으로 판단하고 들이대는 경우를 한정)

 

따라서, 그런 상상과 생각은 사치이고 

그걸 행하려는 노력은 꿈도 꾸지 않는다 

내가 나름의 20대를 살아가는 방법이랄까?

 

그런데!! 

테니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주차장에서

같이 테니스치는 남성분께서 여성분에게 약소한 선물을 주며 "집에서 확인해보셔요~" 하며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주 가곤하는 테니스장

 

글쎄...

나보다 나이도 많은 형님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뭐.. 내 앞선 생각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생각은 아니지만

2030 성인 남성이라면 그런 생각을 두루두루 하곤하니깐~

 

남성분께서  그런 행위에 대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또 어떤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계획했다고 생각하면 또 박수쳐주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내 나이에도 아스팔트에도 백합꽃이 필 수 있다는 상상은 터무니없는 상상인데

그런 낭만넘치는 생각을 갖고 실천에 옮긴다는 게 

일단은 내 협소한 상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일이니깐

 

아아

나는 이 두분을 계속해서 코트에서 볼 수 있을까

묘하게 흥분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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